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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늙은 호박? 그리고 김치, 늙은호박김치하루하루_음식과 문화... 2024. 2. 6. 00:07
호박과 김치는 언뜻 생각하면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늙은 호박’이라면 더욱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하지만 늙은 호박과 김치는 묘하게 어우러져 늙은호박김치로 한 몸이 되어 어엿하게 김치의 한 종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김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전통 음식입니다. 소금에 푹 절인 배추, 무 등을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음식이지요. 이름 그대로, 배추로 담근 배추김치, 무로 만든 무김치 등 김치를 만드는 재료나 조리 방법에 따라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김치의 종류 가운데에서는 이름의 내력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총각김치도 있습니다. 총각김치는 굵기가 손가락만 한 무, 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어린 무를 무청째로 갖가지 양념을 하여 버무려 담근 김치입니다.
무청째로 김치를 담그는, 뿌리가 잔 무를 ‘총각무’라고 하는 데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김치 이름이 생겨납니다. 이때 ‘총각’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어른 남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옛날에 총각은 상투를 틀지 않고 머리를 땋아서 내렸지요. 무의 잎과 줄기로 이루어진 무청의 생김새가 총각의 길게 땋아 내린 머리의 모양과 비슷해서 ‘총각무’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총각무는 ‘알타리’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또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알타리’란 또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뜬금없이 ‘알타이족’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두 글자가 비슷해서 생긴 오해일 뿐입니다.
‘알타리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말인가?’에 대해서는 온갖 추측만 무성합니다. 우선 ‘알이 작은 무가 달려 있다.’라는 뜻으로 “알달이무, 알달이무!” 하고 부르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흘러 ‘알타리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알’이라는 말과 ‘타래’라는 말이 함께 모여 만들어진 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총각무는 달랑달랑 ‘달랑무’라는 귀여운 이름도 가지고 있지만 규범 표기는 ‘총각무’입니다.
다시 늙은 호박
다시 늙은 호박으로 돌아와서, 늙은 호박은 말 그대로 늙어서 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호박입니다. 꽃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둥실 내려앉은 늙은 호박. 둥그렇고 납작한 모양에 색깔은 황색입니다. 세월이 가는 것도 서러운데 이름에 ‘늙은’이라는 말까지 붙다니 더 서러울 듯합니다. 하지만 늙은 호박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깨끗이 긁어 냅니다. 그리고 톡톡 썰어서 소금에 절입니다. 그 후 고춧가루, 젓갈 등의 양념과 함께 버무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늙은호박김치는 김치의 대표 주자인 배추김치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의 상 위에 자신 있게 오릅니다.

빨간 그릇, 빨간 장갑에 햇볕까지 받아 더 붉게 물든 늙은 호박 조각들 늙은 호박은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김치뿐만 아니라 얇게 썰어서 양념하여 무치거나 볶아서 나물로 해 먹거나 늙은 호박을 듬뿍 넣고 끓여서 찌개로 떠먹기도 하지요. 늙은 호박의 껍질과 속을 박박 긁어 강판에 갈아 낸 다음 체에 치고, 찹쌀가루와 함께 반죽하여 전을 부치면 늙은호박전이 됩니다.
늙은호박죽도 있습니다. 늙은 호박을 삶아 짓이긴 다음, 팥을 넣고 쌀가루를 풀어서 죽을 쑤면 늙은호박죽이 됩니다.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호박죽
‘호박죽’ 하면 슬퍼집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때문입니다.
‘선녀와 나무꾼은 하늘 나라에서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들만 데리고 하늘 나라로 올라간 선녀를 그리워하던 나무꾼은 두레박을 타고 극적으로 선녀를 다시 만납니다. 그런데 나무꾼은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하늘 나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 하늘 아래 외딴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자 나무꾼을 본 선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말 한 필을 마련해 줍니다. 단, 절대로 말에서 내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지요. 그런데 ‘절대로’라는 말이 마치 무슨 주문처럼 비극을 만들어 냅니다.
나무꾼은 선녀에게 고마워하며 말 위에 힘차게 올라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땅으로 내려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아들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들여 만든 호박죽을 건넸는데, 하필이면 그 호박죽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나무꾼은 뜨거운 호박죽을 그만 말의 등에 쏟았고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본의 아니게 말에서 내리게 되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게 아니라 ‘말에서 떨어진’ 것이지만, 말은 인정사정없이 그대로 혼자 하늘 나라로 올라가 버리지요.

늙은호박김치 한 그릇 호박죽이 덜 뜨거웠다면, 나무꾼이 호박죽을 말의 등에 쏟지 않았다면, 말은 그냥 말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말인데, 이 굉장한 말이 눈 딱 감고 뜨거운 호박죽을 조금만 꾹 참아 주었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다잡으며 늙은호박김치와 늙은호박죽 한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늙은호박죽 한 숟가락을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갑니다. 아, 정말 뜨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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